게으름 연습 / 나태주


텃밭에 아무 것도 심지 않기로 했다
텃밭에 나가 땀 흘려 수고하는 대신
낮잠이나 자 두기로 하고
흰 구름이나 보고 새소리나 듣기로 했다

내가 텃밭을 돌보지 않는 사이
이런 저런 풀들이 찾아와 살았다
각시풀, 쇠비름, 참비름, 강아지풀,
더러는 채송화 꽃 두어 송이
잡풀들 사이에 끼어 얼굴을 내밀었다
흥, 꽃들이 오히려 잡풀들 사이에 끼어
잡풀 행세를 하러드는군

어느 날 보니 텃밭에
통통통 뛰어노는 놈들이 있었다
메뚜기였다 연초록 빛
방아깨비, 콩메뚜기, 풀무치 어린 새끼들도 보였다
하, 이 녀석들은 어디서부터 찾아온 진객(珍客)들일까

내가 텃밭을 돌보지 않는 사이
하늘의 식솔들이 내려와
내 대신 이들을 돌보아 주신 모양이다
해와 달과 별들이 번갈아 이들을 받들어
가꾸어 주신 모양이다

아예 나는 텃밭을 하늘의
식솔들에게 빌려주기로 했다
그 대신 가끔 가야금이든
바이올린이든 함께 듣기로 했다.



나태주 시집 <산촌엽서> 문학사상사

 

약국 앞 조그만 화단에는 원래 철쭉이 심어져 있었는데, 작년에 가뭄이(?) 심해서 새카맣게 말라 죽어버려, 겨울에 상가 소장이 베어버렸다. 뿌리는 깊어서 파내지 못했는데, 올 봄이 되니 일부는 새싹이 돋기 시작하고, 주변에는 풀들이 돋아난다.

풀이라 해도 새 생명이라 보기에 좋은데, 청소하는 아줌마는 보기 싫은 모양인지,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약국 문 열기도 전에 와서는 싹 뽑아 버린다. 그래도 얼마 안 있으면 자라나는 풀들이, 넓지 않은 화단이라 외려 이름없는 풀들이 더 정다워보인다.